인적 없는 새벽이 외로울세라
새하얀 안개가 한가득의 침묵으로
세상을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다
일상이란 이름으로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안갯속으로 사라져 간
그래서 어느 낯선 이방의 새벽처럼
그렇게 늦가을은 허공을 부유하는 외로움으로
끝없는 안개의 미로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은 안개와 뒤섞여
차마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의
그 답답한 심정처럼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여운을 슬프면서도 신비롭게 들려주고 있다
발길에 부딪치는 은행잎들의 해맑은 노란 미소는
아름답고 묘하게 신비한 빛깔로 생명에서 소멸로
사라져 가는 늦가을의 슬픈 숙명을
절망의 눈물보다는 따스한 황홀의 무아지경으로
이 가을의 영원한 소멸을 말없이 위로하고 있다
문득 스쳐가는 낯선 사내의 무표정한 표정은
아마도 그의 삶이 이 새벽의 신비조차 허락하지 않는
너무도 힘든 삶 이어서 그런 것이련가
그러므로 살아가는 의무로서의 인생의 여정은
그에게 그냥 무덤덤하게 너무도 각박한 삶이었을까
지난밤 불면의 고통으로 굳어버린 고독의 빗장을
이 새벽의 고요로 아무 저항 없이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안개의 새하얀 고독과 은행잎의 포근한 신비로
새롭게 하루를 여는 이 새벽
아 결코 인생은 불행으로만
그렇다고 행복으로 만도 아닌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아니 살아내야 하는 알 수 없는 모순의
이율배반적 天刑인가 보다
--- 한미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