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나를 찾아온
어느 벗처럼 가을바람이
내 가슴에 조용히 찾아드네
여름 비워낸 자리마다
가을의 풍요를 한 상 차려놓고
삶의 노고를 잠시 내려놓으라고
내 가슴에 속삭이는 듯한
가을바람 덕분에 나는 오늘을 사네
어느 한때는 바람이 불면 괜스레
쓸쓸함이 같이 묻어온다고 느꼈지만
중년의 가을바람은 이 세상에
더없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영혼을
위로하는 듯한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네
중년의 삶에는 수많은 이별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그리움이 있음을
가을바람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적당한 힘으로
가벼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참벗처럼 느껴지네
그래서 가을바람과의 대화는 그저
침묵 하나로도 아주 충분한 것을
그 어떤 아름답고 향기로운 말도
바람결에 밀려오는 구름보다
한없이 더 무겁기만 하네
더불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여기의 현실에 얽매인
삶이라는 조건에서 잠시 벗어나
가을바람과 함께 세상을 여행한다면
나 홀로의 여행이어도 결코 외롭지 않으리
--- 한미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