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깊어갈 때 인적 없는
골목 어귀를 서성이는 바람
모른 척 훠이훠이 걸어가면
목덜미를 잡아끄는 바람의 비명
아 벗이여 나의 가을은 그렇게
외로이 부대끼고 있다
실로 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생이라는 일기를 수많은
희로애락으로 쓰고 지우며
그래도 더 나은 내일을 스스로
약속하고 다짐하는 시간이리니
한낮이라 살아 사납게 토해냈던
삶으로서의 이런저런 토사물들을
밤으로서의 고요로 조용히 씻어내고
새로운 새벽의 환희를 소망하리니
그러므로 벗이여 고독과 외로움의
사무친 눈물을 닦아내어 가을밤이라는
그 공허함을 스스로 달래야 하리니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니 죽는 그 날까지
--- 한미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