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자리

[스크랩] 누구나 가르치려한다.

한미르여 부활하라 2015. 8. 11. 10:48

우린 남에게 배우길 좋아할까 가르치길 좋아할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소견으론 대부분 피교육자에 처하기 보다는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기를 원하는 것 같음을 자주 느낀다.

친구들 간의 대화에서나 토론 등에서 흔히 이런 광경이 목격된다.

 

얼마 전에 손녀와 할머니의 재미있는 대화를 녹화한 동영상을 보고

한참 웃은 기억이 있다.

이 동영상에서도 손녀가 할머니나 부모로부터 배운 채식과 육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손녀는 할머니에게 가르치는 대화의 모습을 취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어보아라 아주 잘 가르쳐준다.

 

나이 직위에 관계없이 우린 누구를 가르치려는 일종에 강박관념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교직이나 특히 스님들)

 

그 이유를 나름 찾아보았다.

역시 성장과정에서 자연히 습득된 것임에 분명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끊임없이 가르치려 한다.

느낌 내지 감정까지 가르친다.

부모와 같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모습에서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얼마나

 작품에서 받는 감동까지도 가르치고 자신의 정보를 주입하고 있는지 우린 흔히 본다.

 

그 예술품과 어린 아이 사이의 교감은 없다.

 오로지 정보의 습득과 느낌의 강요만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항상 불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국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우열의 분명한 차이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멋지고 능력있는 가르치는 존재가 되고 싶어!’ 뭐 이런 생각이 무의식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 되고 싶다.

()은 초라하고 불편한 것이다. 마음대로 느낄 수도 없다.

자유가 없다. 난 자유를 원하는데....,

피교육생이 아닌 교육자의 입장이 내 인생의 성공을 말해주는 가장 큰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 모든 방송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강요하는가?

대중들 앞에서 가르치라고 한다. 그렇게 방송의 포맷이 짜여져 있다.

피교육생인 우리는 비록 지금은 저 부분을 모르기에 피교육생으로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설 것이다그것이 성공의 척도로 이미 자리잡았다.

이 피해의식과 결핍은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자동으로 표출된다.

자식에게 친구에게,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많이 갖은 이가 가난한 이에게.

스님이 신도들에게.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그 아이가 경험한 느낌을, 생각을, 상황을,

감정을 따듯한 눈길과 배려있는 말투로 물어봐라.

그리고 기다려 줘라, 표현력이 부족해 말을 못해도 아무 상관 없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이나 상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물어봄으로 인해 아이는,

아니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무슨 느낌을 받았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등등.

이 돌이킴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바탕이 된다.

 

이 바탕 없이 생긴 정체성은 정보의 교집합이고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허상의 자신이다.

이 각자의 공허함은 그대로 사회의 공동문화로 표출된다.

 

지금 나도 가르치려 이 글을 쓰는가?

 아님 단지 내 살림살이를 보여 나를 살피려 이 짓을 하는지 돌아본다.

조고각하!

 

 

행복자비선원   태현

 

 

 

출처 : 행복자비선원( 수진암)
글쓴이 : 태현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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