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딜버트 만화가 스캇 애덤스는 신체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 맞설 때가 됐다고 결정했다. 대담함과 모험이 무엇을 가져다 줄까? 일부 작은 부상이 있었지만 걱정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즐거움도 찾았다고 한다.
By SCOTT ADAMS
필자가 15세 일 때 뉴욕주 북부에 있는 돌 투성이 밭에 사는 마멋이 필자에게 리스크 평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그 동물은 우연히 마주친, 본인도 모르는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요다와 같은 현자 같았고, 나는 지난 1년간 그 동물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지난 1년은 “내가 위험하게 사는 해” 였기 때문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오래 전 한 여름날 필자는 오래된 브리지스톤 모터바이크를 타고 풀밭을 시속 25마일로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앞 타이어가 마멋 의 지하 굴에 빠졌다. 필자는 허공으로 날아갔고, 그 날으는 몇 초 동안 시간은서행했다.
비상의 첫 단계에서,필자의 얼굴이 아직 그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대지를 향해 있는 동안, 중력이 필자를 데려다 주려 하는 듯한 방향에 큰 바위가 많다는 것이 보였다. 필자는 계속 날아갔고, 그 동안 나는 내 스스로에게 나는 모험가가 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어떤 이들은 신체적인 위험을 수도 없이 감당하기로 태어난 듯 하다. 그들은 아드레날린이 흐르면서 기운이 왕성하게 솟는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종류의 인물이 아니다. 필자의 신체에서 아드레날린을 느끼면,그것은 내가 엄청나게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뜻이다. 이 비행(?)도 그 중 하나였다.
공중 제비를 약 75%정도 마쳤을 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개인적인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는 필자의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필자는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즉 이 경험에서 살아남는다면 조상의 뒤를 이어 소심하게, 위험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겠다고. 필자가 아는 한 필자의 혈통에는 영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어느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이 필자의 유전적인 요인에 대해 무엇을 암시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술래잡기 할 때 숨는 순서가 오면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을 정도로 조심스럽다.
순수한 운이었는지 아니면 적기에 개종해서였는지 필자는 바위가 없는 흙바닥에 등을 아래로 하고 납작하게 떨어졌다. 필자는 헬멧을 쓰고 있었고 오래 가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한 주 동안 스스로의 뇌가 어떤 맛인지 알 수 있었다. 캐슈넛 맛이었다.
필자의 위험 회피 생활 방식이 잘 유지되어 수년간 부상 없이 살았다. 하지만 늘 뭔가가 켕겼다. 소심하게 살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결과가 좋은 도전과 좋지 않은 도전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시도하지 않은 기회가 본인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줄까 아니면 오히려로 탈출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팔을 입으로 씹어 끊어서 도망쳐야 하는 그런 지독한 위험을 가져다줄까? 삶의 풍성함그리고 팔을 씹어버리는 위험은 시작점부터 보면 서로 비슷해 보인다.
본인의 저 위험 전략은 지금은 아내가 된 셸리를 만났을 때 더 복잡해졌다. 셸리는 모험가 가족 출신이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19세였던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의 부대에서 최고령 생존 지휘관으로 전쟁포로 수용소 인원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누구나 그 상황에서 할 만한 행동을 했다. 그의 부하들이 누워 총알 발사를 자제하는 중 그는 나치차량을 고속으로 돌진시켜 수용소 앞문에 박았다. 그분께 무서웠냐고 여쭤봤더니 “아니, 아직 내가 갈 때가 안돼서”라고 했다.
그 가족 전체가 그렇다. 그들에게는 두려움 유전자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의 활동이나 관습들이 아무리 좋아도 새로운 활동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 상황에 더해 그들은 그들 못지 않게 두려움이 없는 이들과 결혼한다. 그래서 만약 웬만한 명절 모임에 그들 말을 엿들으면 다음과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는 탈레반 투성이였지만 우리 헬기는 총을 한번밖에 맞지 않았다.”
“의사가 자갈을 빼기 위해 피부 맨윗층을 벗겨내기 전까지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두 번 째 라운드는 내가 트럭으로 뛰어들 때 나를 맞췄어. 그 바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
셸리의 친척 모두 삶을 역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멋 죽음에 대한 내 유년기 경험이나로 하여금 삶을 지나치게 즐기지 못하도록 만들었을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사람이란 사고능력을 날카롭게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응해야 한다고 한다. 필자는 140세까지 살 계획이기 때문에 이 말은 필자에게 중요하다. 마지막 60년을TV리모컨이나 찾으면서 보내기 싫기 때문이다.
2011년이 다가오자, 필자는 다음 12개월간 새롭거나 위험하거나 창피하거나 현명하지 못한 기회에 무조건 “예스”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필자는 발견하기로 했다.
셸리는 얼른 필자의 태도를 반기며 코스타 리카로 여행을 예약했다. 코스타 리카는 원숭이 인구가 매우 크고 군대가 없다. 한 마디로 위기가 될 수 있는 요인들이었다. 하지만 필자에게 그보다 먼저 직면한 문제는 아내의 “재미”라는 것을 겪으면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이는 알고 보니 짚 라이닝 (보기보다는 덜 무섭다) , 위험하고 진흙탕인 정글 을 ATV를 타고 지나가기(거의 한 쪽 다리를 절단할 뻔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림 안의 계곡에서 급류 래프팅을 갔다.
여기서 필자는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 즉 나는 삶에 있어 합리적인 두려움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모두가 갖는 흔한 두려움), 딱 한가지 엄청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즉 필자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이다. 필자에게 급류 래프팅이란 두려움 게이지를 최고로 올린다. 하지만 그해는 필자의 두려움에 직면하는 해였다. 그래서 필자는 올인했다.
처음 문제가 있어보였을 때는 가이드 둘 중 더 경험이 많은 가이드가 셸리와 함께 2인용 카약을 타고, 필자는 새로 온 가이드와 탈 것이라고 말했을 때였다. 대부분의 사고 보도는 “그리고 새로온 사람이….”죽거나 다쳤다고 보도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적신호는 가이드가 급류에 도달해 폭포로 내려갈 때 우리 민간인들은 노를 머리 위에 들고 가이드가 방향을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폭포라니요?”라고 묻고 싶었다.
셸리와 전문가 가이드의 래프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들이 3.6미터 높이에서 S-모양으로 래프트가 물결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셸리는 “야호!”정도를 외쳤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은 달랐다. 가이드(새로운 사람)가 필자가 탄 카약 부분을 조정할 때 폭포 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로 몰고 갔다. 필자의 다음 기억은 코스타 리카 강 바닥에 누워서 위쪽이 어느 방향인지 생각하며 조끼가 필자를 수면 위로 올릴 때까지 숨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구명 조끼가 나를 살렸다. 가이드와 필자는 천신만고 끝에 카약을 다시 탔고, 5분 후에 바위가 많은 또 다른 폭포에서 그 광경을 되풀이했다. 이런 일들은 두 번째부터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알아맞히는 일에 서툰 사람들일 것이다.
더 모험적으로 변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모르겠다.. 삶이 더 풍성해지고 흥미로웠지만 또한 신음도 늘고 옆구리를 잡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기도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한 단계 리스크 를 낮춰야 할 때가 왔다. 다음 모험 때 필자는 조금 더 문명에 가까운 것을 고집했다. 셸리는 하와이를 골랐다. 거기서 내가 했었던 가장 위험한 모험은 바다에서 수영하기 였는데, 상당히 신빙성 있는 보도에 따르면 바다에 상어가 득실거린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위험한 시간대를 피하고 물개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무사하다고 한다. 필자는 그 지역의 상어들이 시간을 읽을 줄 알기를 희망했고, 물개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필자가 성공한 듯 해 보였다.
2011년 한 해 동안, 덜 위험한 나의 모험들은 결과가 훌륭했다. 스코틀란드 무도회에 킬트를 입고 갔고 그 경험은 필자에 해방감을 주었다. 그날 밤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어 킬트를 입기 전에 다리에 면도를 하는 것은 흥을 깨는 일이라 한다.
필자의 친구 스티브는 멕시코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그는 수석 셰프가 “매운 칠리 고추를 썰 때 장갑껴라”고 하면 제안이 아니고 필수라는 것이라는 점도 나에게 알려 주었다. 필자는 그후 4시간 동안 열을 빼는 효능이 있는 마요네즈 우유와 식초를 가지고 실험을 하면서 극심한 고통 속에 지냈다. 또한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수석 셰프가 “화장실 가야 한다면 베이글 집게를 갖고 가라. 나는 돕지 않는다”고 말할 때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샌 프란시스코에서 살사 춤을 시도할 때는 그보다 운이 좋았다. 그 지역은 살사, 살인, 자동차 강도 및 증오범죄의 특화지역인 것 같아 보였다. 우리 계획은 무료 단체 레슨을 할 때 도착해서 새로 배운 스킬을 활용해 밤새도록 춤을 추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각했고 레슨은 절반 정도 끝이 나 있었다. 하지만 따라온 남편이나 친구들역시 애는 썼지만 레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즉 마치 질 나쁜 좀비 영화에 나오는 주차장의 좀비신과 같아 보였다. 클럽이 댄스를 위해 개장하자 정말로 놀랍도록 훈훈하지 못한 싱글 남자들이 지독히 유행 지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살사 바보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다른 남자, 즉 방문객에 비해 살사를 제대로 출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여성 파트너들을 고를 수 있었다. 필자는 아내를 우리 쪽으로 온 첫 번째 살사 바보 방향으로 밀고 “한번 망가져봐. 난 여기 있을 게”라고 했다.
2011년에는 또한 필자가 골프를 시작했다. 좋은 도전과제일 것이라 생각해서 그랬는데, 지금까지는 유일한 문제가 4인조에서 늘 누군가가 필자를 헬멧을 쓴다고 구박하는 못된 이가 있다는 것이다.
위험하게 사는 한 해는 이제 막바지로 가고 있다. 알고 보니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모험을 더 잘 견딘다. 아내와 그녀의 친정 식구들은, 예를 들어, 두려움 없는 가젤처럼 위험하고 잘 모르는 상황에서 길을 찾아 가는 일을 잘한다. 필자는마치 다리 저는 얼룩말 같으며, 왜 다른 얼룩말들이 물 마실 때 다리 저는 나를 노리는 사자를 미리 보고 도망가는 이유를 모르는 부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얼룩말은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적어도 사자밥이 될 때 까지이다. 필자가 시도한 모든 것에 대해 만족하며 앞으로 남은 90여 년의 여생 동안 시도할 활동들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2012년에는 모험을 거절하기 전에, 그것이 순수한 자신의 선택이지, 과거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두려움으로 인해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라. 모험마다 다 항상 즐겁지는 않겠지만, 모험의 가능성에 예스라고 했던 사람이었다는 점 때문에는 늘 즐거울 것이다.
—스캇 아담스는 유명 카투니스트로, “딜버트”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