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때로는 한밤의 고요가 한낮의 부산함보다
더 많이 우리에게 세상의 진실을 이야기하듯이
늦은 밤 홀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의 정점이
우리가 망각이라 이름하는 그 세월 속에 말없이
사라져 간 슬픈 사랑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목메어
그리워해야 하는 가장 기쁜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잊은 듯 잊힌 듯 외면할지라도
실로 순수했던 사랑의 추억은 좁디좁은
가슴속 그리움의 호수를 찰나마다 범람하고
마침내 몸과 마음으로 빗물처럼 여울져
온종일 이슬비 같은 눈물로 축축하게 영혼을 적신다
차라리 지금 창 밖에 절박하게 쏟아지는 빗물에
말끔히 씻겨 가도록 버리고 싶은 추억의 낡은 일기장들
흐려지는 눈동자의 초점이 점점 어두움으로 조여 올 때
저 멀리 가로등 불빛 따라 가물가물 떠오르는 추억의 찰나들
비구름 가득한 밤하늘의 적막한 그림자가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뚜벅거리며 걸어올 때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의 장대가
가슴을 휘휘 젓는 견딜 수 없는 인생의 원초적 모순
인생의 나이만큼 쌓이고 쌓이는 고독의 분량으로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나가야만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가 그러므로
삶은 눈물로 와서 눈물로 가야만 하는 위선의 행복한 여정
아 그러나 차라리 행복이라는 유희를 버리어
점점 소멸로 치닫는 존재의 진실을 깨닫는 이 밤의
숙명 앞에서 그래도 가슴에 아직도 붉디붉은 피가
맴도는 것을 느낀다면 비로소 우리는 실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절실하게 사랑이 그리운 것이다
--- 한미르 ---